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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6. 6世 〉55. <광양공>증가선대부병조참판행광양현감공묘갈명(贈嘉善大夫兵曹參判行光陽縣監公墓碣銘)
1. 문헌 목록 〉6. 6世 〉57. <태사공>반구정기(伴鷗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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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태사공>사인공휘응유사(舍人公諱膺遺事)
<태사공후>사인공휘응유사(舍人公諱膺遺事) 公諱膺字大興號伴鷗亭系出玉川玉川卽淳昌舊號也高麗檢校大將軍諱璋爲公之鼻祖而金紫光祿大夫太師門下侍中同平事諱璵之曾孫中門祗候諱元琦之孫吏曹判書諱淵之子也 世宗朝官至舍人天性閒晏厭世紛紛 世祖乙亥棄官南歸卜居于任實縣食山村作亭於潮浦島仍潮浦亭又號常與知己觴詠於亭上以終老焉早以經學行儉名於一世當時名流稱之以師表多有唱和以孝悌忠信禮義廉恥八廉恥八字各以著銘爲人疊屛常置几案間以此爲家則敎訓子孫日頌陶淵明歸去來辭以適其志散其家財以周賓友窮族鄕里無不稱服自少至老學力不倦禮節不廢雖有風雨寒暑晨夕謁廟朔望省塋人稱根天之孝友千百世惟公一人而己曾有腏亨之論而未成淑夫人報恩成氏判書繼元女生一男曰得才官至司正得才生四男長曰長孫次曰叔孫季曰季孫長男官至郡守皆以文章學行爲家業世世冠冕繼承至八代孫察訪公諱廷協公之行狀與詩集盡屬燼灰此蹟在於進士公書帖故錄于家乘伴鷗亭原韵亭上春花老簷一點紅漁歌烟渚月牧笛暮山風鳥宿鶴林外鷗眠潮浦中淸波今日興添却國恩洪 사인공휘응유사(舍人公諱膺遺事) 공의 휘는 응(膺)이요 호는 반구정(伴鷗亭)이며 옥천조씨인데 옥천은 곧 순창의 구호였다. 고려검교대장군 휘 장(璋)이 공의 五世祖요금자광록대부 태사문하시중 동평장사였다. 휘 여(璵)의 증손이며 중문지후 휘 원기(元琦)의 손자이고 이조판서 휘 연(淵)의 아들이다. 세종조(世宗朝)에 벼슬이 사인(舍人)이요 천성이 한아하고 강직하여 세속의 분요(紛擾)가 실어 기해(己亥)년 가을에 벼슬을 하직하고 남으로 내려와 임실현(任實縣) 식산촌(食山村)에 터를 가려 살며 조포섬(潮浦島)에 정자를 지어 조포정이라 이름하고 항상 지기로 더불어 정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으면서 노년(老年)을 마치었다. 일찍 경학과 행의로써 당세에 령문(令聞)이 있으니 당시 사우가 사표(師表)로 칭송하고 많은 창화(唱和)가 있었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耻) 八자로 각기 그 뜻을 새겨 八폭 병풍을 만들어 항상 좌상에 두고 이로써 가법(가법)을 삼고 자손을 가르치며 날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외며 그 뜻을 편안히 하고 그 가산을 나누어서 가난한 벗과 궁한 겨레를 구제하니 향리에서 칭송하며 감복 아니한자 없었다. 평생 학문을 힘쓰고 예절을 지켜 비록 풍우한서(風雨寒暑)라도 밤새 벽으로 사당에 참알하고 삭망에 성묘하니 사람이 근천지효우(根天之孝友)는 千百세에 오직 공 한사람뿐이라 칭송하였다. 일찍 사우(祠宇)를 지어 석채(釋菜)할 의론이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숙부인 보은성씨(報恩成氏)는 판서 계원(繼元)의 女로 一男 득재(得才)를 두었는데 벼슬은 습독(習讀)이요 득재가 三男을 두었는데 장손(長孫) 숙손(叔孫) 계손(季孫) 중 숙계는 다 후사가 없으며 장손은 군수요 대대로 문장 행의 작록이 계승하였고 八대손 찰방공 정협(廷協)이 공의 행장과 시집을 화재에 다 소실하였는데 이 사적이 진사공 휘 필(弼)의 서첩(書帖)에 실려있는고로 가승에 옮겨 기록하였다. 조포정원운(潮浦亭元云) 亭上春花老簷一點紅 정각 위에 봄 꽃이 늙어 처마 앞에 한점이 붉었도다 漁歌烟渚月牧笛暮山風 어부는 아지랑이 낀 물가에 달을 노래하고 목동은 저물녘 산바람에 피리를 부는 도다 鳥宿鶴林外鷗眠潮浦中 새는 학림밖에서 자고 갈매기는 조포 가운데서 자는구나 淸波今日興添却國恩洪 맑은 물결 오늘날 흥은 도리어 국은의 넓이를 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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